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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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는 듯 다정하고 담백하게
타인의 말을 듣고 당신과 함께 걷는
대화와 산책의 소설
작가정보
목차
- 1부 7
2부 29
3부 69
4부 153
작가의 말 171
추천의 글 172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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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자기애도, 격한 자기혐오도 없이 자신과 외부 세계를 설정해 나가는 묘한 며칠에 대한 소설이다. 인물들은 걷고, 헤매고, 자라고, 말하고 듣고, 넘어선다. 마지막 넘어서는 순간은 확실히 빛이 난다. 눈물의 빛이면서 이해의 빛이다. 은모든이 또 어느 방향을 택하여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갈지 나는 이미 감탄할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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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이 책이라면 은모든의 소설 같을 거라고 늘 생각해 왔다. 그는 주로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났거나 벗어났거나 방황하는 현대인들의 이야기를 소설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그리지만, 그 기저에 한결같이 흐르는 나른하면서도 느긋하고 무겁다가도 홀가분해지는 은모든 특유의 리듬은 햇볕이 따뜻한 날 강변을 산책할 때의 그것과 무척 닮았다.
책 속으로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경진은 오늘 오전에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문득 자신에게 다가와서 속사정을 털어놓던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경진은 그들에게서 반년 넘게 집 안에만 틀어박혀 지내던 일이나 결혼결심을 굳히게 된 점괘, 혹은 삼대에 걸친 가족의 병력에 대해 들을 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물론 무엇보다도 경진의 예상을 뛰어넘은 것은 그 후로 해미네서 연락이 없다는 점이었다.
경진은 해미와의 대화창을 열어 부모님이 얼마나 걱정하고 계신 줄 아느냐고 적었다. 10대 시절에 한 번쯤 가출하는 일은 흔한 사건이니 그 경우에 가능성을 걸어 보기로 했다. 행여나 반발심이 들 만한 표현이 있지는 않을까 싶어 몇 번이고 메시지를 수정한 뒤 전송 버튼을 눌렀다. 그러고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로 향했다
-26~27쪽
왼쪽에 남산 도서관이 보이면서 서울 타워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남산의 중턱을 가르는 차도 주변으로도 은행나무 길이 이어져 햇볕을 적절히 가려 주었다. 바야흐로 산책하기 제격인 계절이었다. 반팔을 입고 걷기에 덥지도 춥지도 않았고 산을 따라 이어진 길은 한산하기까지 했다. 이따금 오른쪽 시야를 가릴 만한 건물이 없는 경우에는 남산 아래로 적색 기와를 얹은 후암동의 다세대주택부터 여의도 방면의 스카이 라인까지 서울 시내 전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 길을 따라 느긋하게 20분쯤 걸었을 때였다.
-45쪽
듣고 보니 신기하다고 경진은 맞장구를 쳤다. 사실 경진에게 가장 신기한 것은 따로 있었다. 엄마 입에서 ‘재미’라는 말이 연거푸 나오는 모습. 그야말로 전에는 한 번도 본 기억이 없는 신기한 일이었다. 경진은 산책을 하며 발견한 것을 더 들려 달라고 했다. 그러고 짐을 찾으러 가는 길에 지나가는 말처럼 질문을 던졌다.
“엄마, 어제부터 뭐에 씌었는지 사람들이 저한테 와서 막 묻지도 않은 별별 얘기를 다 해 주더라고요. 엄마는 저한테 뭐 하고 싶은 얘기 없어요?”
“하기야, 그때 얘기를 하기는 해야겠지.” 엄마는 자못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그래. 하는 게 좋겠다.”
-98~99쪽
어깨 위에 떨어진 뜨거운 물방울이 세신사의 눈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경진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세신사는 눈물을 훌쩍이며 경진의 몸 위를 따듯한 물로 다시 한번 훑어 냈다. 경진은 잠시 숨을 고르고 손등으로 눈가를 닦은 후에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세신사의 손에서 노란 때밀이 장갑을 벗기고 그녀의 두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경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뿐이었다. 따님은 분명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라고 전하고 싶었지만 입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잠시 손을 맞잡고 있었다.
-167쪽
출판사 서평
■ 경진의 괴이쩍은 휴가
과외 교사로 일하는 경진은 실로 오랜만에 사흘의 휴가를 맞이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만 있고 싶은 날이었지만, 첫날부터 계획은 조금씩 어긋난다. 가장 먼저 휴가를 방해한 건 과외 학생인 해미의 소식이었다. 수업이 시작하기 전 해미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해 보였지만, 경진에게는 그 말을 들을 여유가 없었다. 경진은 걱정보다는 별일 없을 거라는 믿음으로, 휴가를 보내려 한다. 그런데 그때부터 사람들이 경진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인 것처럼 자신만의 사연과 추억을, 어제와 오늘을, 슬픔과 기쁨을 털어놓는 것이다. 안경점 주인, 결혼 준비에 바쁜 친구, 남산 중턱에서 길을 잃은 부녀, 몰라보게 바뀐 고향의 엄마, 우연히 만난 고교 동창, 기차 맞은편 좌석에 앉은 승객, 찜질방의 세신사까지…… 말 그래도 모두 경진과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이상한 일이지만 이상하지 않다는 듯이 경진의 휴가는 흘러가는데, 해미에게서는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다.
■ 경진의 근사한 사람들
대화의 가장 근사한 짝은 산책일 것이다. 홀로 하는 산책에서는 스스로에게 말을 걸고, 누군가 같이 걷는 길에서는 우리는 대화는 더욱 자연스러워진다. 대화의 짝으로 또한 알맞은 것은 음식이다. 맛있고 정갈한 먹을거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이와의 소박한 대화만큼 즐거운 것이 또 있을까. 『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에서 인물들의 내밀한 사연은 서울 남산과 전주 한옥마을의 곳곳에 목소리가 되어 담긴다. 그들은 함께 걷고 마주해 앉는다. 그들 모두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조금은 힘겹고, 약간은 방황하지만 결코 중심을 잃지 않은 채로, 삶을 지속한다. 경진은 사흘 동안의 이야기 수집가가 되어, 그들의 삶을 차곡차곡 쌓아 간직한다. 그 쌓음을 지켜보는 독자는 소설의 앞쪽 이야기와 뒤쪽 이야기가, 왼편 사정과 오른편 고백이 묘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윽고 책장을 덮을 때, 우리는 이야기와 이야기로 연결된 존재임을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책을 다 읽은 당신은 지금껏 경진의 이야기를 읽던 눈을 들어 곁에 있는 사람을 보게 될 것이다. 당신의 이야기를 그에게 풀어놓기 위하여.
기본정보
ISBN | 9788937473272 | ||
---|---|---|---|
발행(출시)일자 | 2020년 05월 29일 | ||
쪽수 | 180쪽 | ||
크기 |
136 * 196
* 17
mm
/ 275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오늘의 젊은 작가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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