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답고 추한 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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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나이 든 몸, 장애가 있는 몸, 가난한 몸, 병든 몸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몸에 관하여
작가는 이 책에서 ‘아름다움’ ‘부유함’ ‘정상이라 불리는 것들’과 반대되는 ‘추함’ ‘가난함’ 그리고 ‘비정상이라 불리는 것들’을 끄집어낸다. 그 차별의 중심이 몸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꼬집는다. 자기 자신마저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몸, 형제복지원·장애인 시설 등에서 오랫동안 자유를 잃고 학대당했던 몸,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만으로 욕먹는 장애인의 몸, 가난하기에 인격을 빼앗긴 몸…. 어쩌면 무겁고 고통스럽게 다가올 수 있을 주제들을 간결하면서도 위트 있는 문체로 써내려간다.
작가는 삶을 사랑하고 인간과 동물에 대한 애정이 충만하며, 악함마저 모두 끌어안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단단한 세계를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때로는 읽는 이의 눈물샘을 건드리고 너무 익숙해서 차별인지도 몰랐던 회색지대를 들려주며 허를 찌르는 반전을 선사하기도 한다. 각 챕터 말미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추련) 대표, 무연고 장례지원 사단법인 이사, 정신의학과 전문의 등 다양한 분야의 이들의 인터뷰를 수록한 점도 이 책을 읽는 묘미다.
작가정보
글쓰기 노동자로 반려견 몽덕이와 살고 있다. 어디에도 소속돼 있지 않아 불안하지만, 대체로 별일 없이 산다. 지리멸렬하게 살 수 있는 것도 복이라고 생각한다. 40대 후반이 되니 노후가 두렵기도 하다. 나이 들수록 친구가 소중하다. 친구를 사귀고 싶어 글을 쓴다(사실은 먹고살려고 쓴다).
〈한겨레〉에서 13년간 기자로 일했다. 독일과 부탄에서 3년여 산 뒤 국제구호 NGO ‘세이브더칠드런’에서 1년 7개월 일했다. 돌아보면, 잘못한 일투성이다. 내가 사람들을 봐줬던 게 아니라 사람들이 날 봐줬다는 걸 깨닫는다.
지역보험 가입자가 된 뒤 껑충 뛴 건강보험료를 볼 때마다 분노하며 월급생활자를 부러워하다가도 하루 두 번 몽덕이와 산책할 때면 이 삶에 만족한다. 책 《이해하거나 오해하거나》 《가끔 사는 게 창피하다》를 썼다.
목차
- 추천의 글
프롤로그
chapter1 관리당하는 몸
몸뚱이를 사랑해 달라고
44사이즈가 돼야 얻는 사랑이라면
30대가 세 살이 되는 사랑의 불시착
‘공감과 섬세함’이 무섭다
‘탈코르셋’을 바라보는 복잡한 마음
아홉 살 여자가 말했다, “여자애라서”
내가 ‘생리충’이 아니듯 그녀도 ‘내시’가 아니다
나는 왜 방탄소년단 춤을 포기했을까
갱년기, 댄스복을 사다
Interview 어쩔 수 없는 나여도 괜찮다
- 거식증과 싸워온 신지유 씨
chapter2 추방당하는 몸
나의 깨끗함을 위해선 남의 더러움이 필요해
천진난만함이 꼴 보기 싫어
백인 혼혈은 예능에, 동남아 혼혈은 다큐에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
“그럼 시설에서 살래요?”
그가 옳고 내가 틀렸다
사람 취급 못 받아야 사람이 되나
우아하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비겁한 ‘사회적 합의’
Interview 영희 씨는 제일 못된 장애인이다
-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
chapter3 돌보는 몸
자유는 몸으로 만질 수 있다
담을 넘으면 뭐가 보일까
촉감이 필요해
할머니가 뜬 수많은 별아
누가 나를 돌볼까, 나는 누구를 돌볼까
밥하는 일보다 중요한 노동은
셋째 이모, 박영애
빨래방 구직기
Interview 걸으며 발의 감각을 느껴봤나요?
- 문요한 정신의학과 전문의
chapter4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인기척
고독이 고립이 되기 전에
전화 한 통보다 절망이 쉽다
더럽게 외로운 나를 구한 ‘개 공동체’
너는 도인 아니 도견이구나
개에게 배우는 사랑
쓰레기 자루 속 레몬 빛깔 병아리
냉소한다 그래서 행동한다
이 문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가래떡을 먹는 시간
‘땐뽀걸스’의 지현과 현빈이는 아직도 춤을 출까
그때까지 행복해질 수 없다
김종분 씨와 곰돌이 푸
Interview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인기척
- 무연고 장례를 지원하는 사단법인
‘나눔과나눔’ 박진옥 상임이사
에필로그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짠하지
추천사
-
김소민의 글에 배어 있는 유머를 좋아한다. ‘분노’에서 시작한 글이라고 하지만 분노 유발자에게 화를 쏟아내지 않는다. 화가 나고 원망스러운 순간에도 그는 손톱만큼의 여유라도 찾아 웃음을 만든다. 이런 유머는 궁극적으로 삶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읽다 보면 글쓴이와 친구가 되는 기분이다.
이 책은 다양한 몸을 화두로 삼았지만 궁극적으로 ‘관계’와 ‘사랑’을 말한다. 다른 몸을 배척하고 타인의 취약함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 일이 극심해지는 사회에서 서로의 약함을 끌어안을 수 있는 관계에 대하여. 모든 생명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성장한다. 그것이 돌봄이 품은 ‘살리는 힘’이다. 타인의 체온이 전하는 감각, 안부를 물어보는 말 한마디가 우리를 살린다.
글쓴이의 솔직한 분노 속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생명을 살리고픈 ‘인기척’을 느낀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여기 나도 있다, 지금 내가 당신에게 가고 있다며 글쓰기로 온 세상을 향해 인기척을 낸다. 서로에게 인기척을 내는 관계의 가능성을 말한다. -
‘눈이 1밀리미터만 옆으로 더 찢어졌더라면…’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예측할 수 없이 다양한 세계로 나를 데려간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노는 어린 여자들부터 난데없이 북한에 떨어진 여자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장애인들의 지하철 시위, 개를 산책시키며 만난 사람들의 ‘개모임’, 공장식 축산의 동물들까지…. 다음은 어디지? 누구지? 어디까지 가는 거지? 불안도 가득하고 지성도 가득하고 허당끼도 가득하고 다정함도 가득한 그를 따라가면 갈수록 다음 이야기가 더 궁금해져서 마음이 들썩인다. 그의 곁에서 보니 세상도 세상이지만 무엇보다 내 유년과 청춘의 시절이 다르게 보인다. 너무 당연해서 그런 게 차별인지도 몰랐던 것들이 줄줄이 소환되어 새삼 원통하면서도 한 번도 주인이었던 적 없는 내 몸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내 인생인데, 내 몸의 주인이 내가 아니었다는 걸 이제 깨닫다니, 40년 넘게 나는 허방 짚었다.
자본주의적 효율성에 저항한다는 장애인운동을 하면서도 나날이 내 몸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게 두렵다. 남의 약함은 차별하면 안 된다고 큰소리 뻥뻥 치면서도 내 약함은 아무에게도 안 들키려고 오늘도 분투한다. 도저히 그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도 내가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춤을 추건 말건 관심 없다는 사실을 끝내 머리로만 알다가 인생이 끝날 것 같다. ‘내 몸은 내 부끄러운 식민지. 관리와 착취의 대상.’ 나도 김소민처럼 언젠가는 내 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내 몸속에도 필시 김소민이 들려주는 것처럼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아, 벌써부터 듣기가 싫고 부끄럽다. 나의 몸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 얼마나 많은 타자의 몸이 필요한지, 그 몸이 하는 말을 제대로 듣기 위해 얼마나 많은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이 책을 통해 배웠다. 그걸 찾아가는 여정이 얼마나 지난한지, 동시에 얼마나 눈물겹고 신나는 일인지도.
책 속으로
혐오의 대상을 구별하는 핵심은 몸이다. 몸이 차별의 근거가 된다. 혐오는 이분법을 타고 흐른다. 남성/여성, 문명/야만, 장애/비장애, 젊음/늙음…. 이분법에는 위계가 있고 혐오는 은유를 타고 확장된다. 젊음은 혁신의 은유, 남자답다는 용기의 은유, 아름다움은 선함의 은유가 된다. 은유에는 논리가 없고 설명이 필요 없다. 스며들 뿐이다. 맞서 싸우기 힘들다. 그래서 몸의 차이를 근거로 차별하면 쉽게 오래 착취할 수 있다. 착취당하는 사람 스스로 자신을 혐오하게 되니까._10~11쪽
탈코르셋을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여전히 헷갈린다. 왜 탈코르셋은 다 똑같은 모습이어야 하나. 아줌마인 나는 하이힐 신고 미니스커트 입으면 ‘주책맞다’는 소리를 들을 확률이 높다. 이런 나에게도 탈코르셋은 똑같은 형태여야 할까? 머리를 자르지 않고 화장을 해서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면 탈코르셋도 억압이 아닐까? 머리 길이, 연애 여부 등을 OX 퀴즈처럼 질문받고 맞는 답을 내야 페미니스트로 인정하겠다는 태도를 볼 때는 반감이 인다. 단순할 수 없는 인간을 단순하게 정리하려는 것이 폭력 아닌가._57~58쪽
“여자라 그런지 잔머리가 장난 아니에요.” 차별의 지독한 속성은 당하는 사람 속으로도 스며든다. 그러면 자신을 구석으로 내몬 바로 그 차별에 적극적으로 복무하기도 한다. 차별은 억압받는 자의 자기혐오로 완성된다. 거기까지만 가면 굴종을 강요할 필요도 없다. 억압받는 자가 억압받는 자를 억압한다. 억압하는 자로서는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다. 통제는 더 쉬워진다. 아들, 딸 차별의 최전선에는 대개 어머니들이 있다. 육아 대부분을 하는 어머니들은 밥부터 잠자리까지 일상의 매 순간 차별할 수 있다._60~61쪽
특권은 편안함이다. 너무 자연스러워 특권을 누리는 게 느껴지지도 않아야 일상적 특권이다. 피부색, 성별, 가난 탓에 자기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 매 순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자유다. 타인의 시선,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는 자기 시선, 그 시선을 회의하는 또 다른 자기 시선, 이 모든 시선에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거다. 그 시선들의 투쟁이 일어나는 복잡한 마음을 알지도 못하면서 묻는다. ‘그걸 왜 못 해?’ ‘왜 그렇게 꼬였어?’_74쪽
노년을 다룬 책들을 읽어보면, 행복곡선은 저점을 찍고 천천히 다시 오르며 U자를 그리는데 이때 필요한 것 하나는 자기통합이다. 자신의 밝음과 어둠, 직선과 곡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 변화는 완전한 몸과 마음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늙고 죽을 불완전한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했다. 불완전한 자신을 받아들이는 건 불완전한 타인을 끌어안을 준비가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쩌면 행복곡선의 바닥을 찍고 나서 ‘생산’의 몸에서 ‘공감’의 몸으로 넘어가는지도 모르겠다._85쪽
아파트 경비원은 초소에서 밥을 먹지 못한다. 지하로 내려가야 한다. 석면가루가 떨어지는 곳이다. 종합버스터미널 경비원 대기실은 공중화장실에 붙어 있다. 이곳에서 세 사람씩 매일 잔다. 침구에서는 벌레가 무더기로 나온다. 침구를 빨고, 샤워장에서 샤워할 수 있게 하고, 대기실을 만드는 데 돈이 얼마나 드는지 모르겠다. 그런 곳에서 먹고 자고, 씻지 못하게 하는 건 ‘그들’을 ‘우리’에게서 분리하는 방식이다. 매 순간 당신은 ‘그들’이지 ‘우리’가 아니라고 당사자의 마음에 새겨 넣는 방법이다._104~105쪽
“저 아래 대로 쪽으로 가시면 상가가 나올 거예요. 거기서… 저희 집은… 수세식이 아니라서… 보여드리기가….”
여자는 창피해하는 것 같았다. 나는 오줌을 참으며 생각했다. ‘집 화장실은 자기가 아닌데 왜 창피해하지?’ 평생 수세식 화장실이 있는 집에서 살아온 나는 화장실과 나를 엮어 생각해야 했던 적이 없다. 그래서 편하게 그를 판단했다. 알지도 못하면서, 오줌 마려워 짜증 난 얼굴로._108쪽
어떤 사람의 목소리는 죽어야 들린다. 1995년 3월 8일 최정환 열사는 분신했다. 장애인단체 활동가들이 6시간 동안 기어서 한강대교를 건너고 활동보조 제도가 도입됐다. 그때를 회상하며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 추진연대 상임대표는 웃으며 내게 말한 적이 있다. “아이고, 우리 투쟁은 왜 이렇게 만날 처절해야 해.” 우아하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요구하지 않아도 기본권을 누릴 수 있는 ‘행운’, 말만 해도 다들 귀기울여주는 ‘행운’을 물고 모두 태어나지 않았을 뿐이다._139~141쪽
자기 몸이 수치스러운데 어떻게 마음껏 움직이겠나. 24시간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 자신을 가둔 수인이라 남들 보는 데서는 맘껏 춤출 수가 없다. 예전에 한 워크숍에서 몸짓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에 남들이 바닥을 구르고 두 팔을 날개처럼 휘젓는 동안 공포에 휩싸였다. 나는 이런 자유가 무섭다. 그때 나는 겨우 발 한쪽씩만 앞으로 내밀며 내 이름을 말하고 말았다. 내가 동경하는 한 선배는 챙이 큰 모자를 쓰고 흥이 오르면 춤을 춘다. 바닷가에서도, 광화문 한복판에서도 춘다. 나는 선배가 부러워 침을 질질 흘리는데 그렇게 할 수가 없다._165쪽
아픈 사람들은 원래 인간이 취약한 존재임을 드러낸다.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상기시킨다. 통제 가능한 몸을 효율적으로 써서 독립적인 존재로 쭉 산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 심장마비와 암을 앓은 아서 프랭크는 “아픈 사람들은 이미 아픔으로써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고 썼다. 그는 아픈 동안 몸의 경이를 생생하게 경험했다. 고통은 삶의 필수 불가결한 일부이며 자신은 작지만 세상에 연결된 존재라고 느낀다._186쪽
이모가 일한 곳은 대개 5인 미만 업체였다.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법으로 명시한 곳들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말을 인용하자면 “인도도 안 하고 아프리카에서나 하는 손발 노동”으로 그는 두 아이를 어른으로 키웠다. 그의 ‘손발 노동’이 없었다면 이 가정은 무너졌을 거다. 밖에서 무슨 일을 하건 가사노동은 상수였다. 제사나 명절이 돌아올 때면 3일 전부터 이모는 속이 울렁거렸다. 집안일이건 바깥일이건 그의 일은 일 취급받지 못했다. 그는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고, 시집에서는 ‘그냥 노는 여자’였다._198쪽
나는 내 위선을 보았다. 여기저기 빨래, 청소, 밥 짓기 등 삶에 필수적인 노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글을 썼다. 왜 사람을 살리는 노동은 홀대받아야 하는지 분기탱천하며 썼다. 진심이었다. 그런데 그 면접실에서 나는 아마 이런 말이 하고 싶었던 거 같다. ‘나 빨래하는 사람 아니에요.’ 무시당할까봐 두려웠다. 내 무의식은 그렇게 밥상을 엎었다. 돌봄 노동은 숭고하지만 ‘내’가 할 수는 없다는 거다. 왜 가치 있다고 자기 입으로 침 튀기며 말한 노동을 자기는 할 수 없나?_201~202쪽
공원에서 개를 조용히 시키라고 한마디 한 남자에게 흰자위를 드러내며 으르렁댄 나는 과잉 경계 상태였던 걸까? 친구가 카톡을 ‘읽씹’ 하면 종일 마음속에서 뭉근한 화가 끓어오르는 건 내 고독감 때문일까? 상대의 사소한 행동에도 날 무시하느냐며 (그나마 다행히) 상상 속에서 멱살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도? 100퍼센트는 아닐지라도 상당히 그런 거 같다. 이 악순환의 무한 사이클을 바꿀 자신이 나는 없다._222쪽
수도권에서만 평생 산 나는 ‘우리 동네’를 가져본 적이 없다. 2년마다 전세금에 쫓겨 이사 다녔다. 회사 다닐 땐 오피스텔에서 잠만 잤다. … 오다가다 안면 트기는 더 어려워졌다. 내가 사는 곳에서 관계 속 나를 물리적으로 확인할 기회가 점점 사라졌다. 그런데 슬프게도 사람이 위로받는 순간, 안전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관계를 손으로 만져볼 수 있을 때다. 카톡으로 대신할 수 없다. 허기가 유튜브 먹방으로 채워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어른이나 애나 똑같다._229쪽
내 윤리는 입맛 앞에서 얼마나 초라한가? 다른 생명의 고통은 내 혀끝의 쾌감보다 얼마나 가볍나? 빵집에서 팥과 버터가 들어간 바게트 맛이 궁금해 샀다. 크림빵도 샀다. 우유를 많이 먹으려고 인간은 젖소를 강제 임신시키고 송아지에게 돌아갈 젖을 가로챈다. 빵 두 개를 비닐에 따로 담아 다시 봉지에 넣어준다. … 집에 돌아오니 개 몽덕이가 두 발로 서서 기쁘다고 난리다. ‘그 무엇도 착취하지 않는 몽덕아, 너는 세상에 무해한 존재구나.’ 이상하다. 세상에 유해한 유일한 종인 인간이 무해한 존재들을 업신여기며 더럽다 한다._246쪽
김진숙이 36년간 복직 투쟁을 벌일 때, 나는 ‘서밋’ 같은 데 살아야 인간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생각했다. 40대가 된 나는 여전히 불안하다. 그리고 이제야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부당해고를 당한 김진숙이 복직되지 못하면, 그런 상식적인 일조차 일어날 수 없는 사회라면, 나는 아마 죽을 때까지 불안할 거다. 그의 복직을 바라는 마음 말고는 공통점 없는 사람들이랑 가래떡을 먹는 순간 같은 게 없다면, 인생은 의미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_257쪽
출판사 서평
“약함을 몰아내면 악함이 들어온다.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도 비슷했다. 몸은 머리의 지배를 받는 식민지여야 했다. 몸은 내 인정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채찍질해야 할 도구였다.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면 내 몸 이곳저곳을 깎아내야 할 것 같았다. 늙어가니 보기 싫은 구석이 늘어간다. 생산성 떨어진 내 몸은 쓸모없는 것이 될까 두렵다. 보기 싫은 구석들을 다 도려낸다면 아마 나는 뼈만 남을 거다. ‘아, 굽은 정강이뼈가 콤플렉스이니 뼈도 못 추리겠구나.’ 내가 내 몸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타인을 본다.”_11쪽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짠하지”
약함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에서는
모두가 불안하고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에서는 ‘관리당하는 몸’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거울 속 자신을 보며 ‘눈이 1밀리미터만 찢어졌으면’ 바랐던 경험, 술자리에서 친구에게 “네 얼굴 귤껍질 같다”고 비난받았던 일, TV 속 드라마에서 나오는 “꾸미는 여자가 남편에게 사랑받는다”라는 대사….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어본 몸에 관한 차별과 작가 자신조차도 자기 몸을 ‘부끄러운 식민지’나 ‘관리와 착취의 대상’으로 봐왔던 시간들에 관해 진솔하게 써내려간다.
2부에서는 ‘추방당하는 몸’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못 사는 나라’의 외국인에게 가해지는 인종차별, ‘선감원’ ‘수심원’ 등 시설에 감금되어 학대당했던 사람들, 경비원·배차원 등 우리 사회에서 ‘임계장(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준말)’이라 불리는 이들에게 행해지는 인간 이하의 대우들,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를 향한 몰이해 등. 작가는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고, 약한 이들에게는 차별과 학대를 합리화하는 이 사회를 고발한다.
3부에서는 ‘돌보는 몸’에 관해 이야기한다. 작가는 ‘자기 손으로 밥해먹다 죽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었던 친할머니가 쓰러진 뒤 요양보호사의 도움 없이 홀로 화장실을 가고자 고집 부리는 상황을 의아해한다. 그러나 곧 아픈 이에게도 존엄한 삶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편으로는 돌봄을 제공하는 이들의 노동 또한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사람은 누구나 돌봄을 주고받는 이가 될 것이며, 돌봄은 ‘사회를 하나로 잇는 행위’라는 것을 강조한다.
4부에서는 다양한 몸들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권리와 나아가 동물권이 보장돼야 함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36년간 투쟁해왔던 김진숙 민노총 위원의 복직투쟁에 함께 참여해 연대하기도 하고, 서로 개 산책을 시키며 인사만 나누던 동네 주민에게 휴대전화를 잃어버렸을 때 도움을 받기도 한다. 무연고 장례식에서 일면식 없는 타인의 장례를 정성껏 치르는 이들을 보며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인기척을 건네는 일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안전기지를 만들어주는 일인지 강조한다.
“혐오의 대상을 구별하는 핵심은 몸이다. 몸이 차별의 근거가 된다. 혐오는 이분법을 타고 흐른다. 남성/여성, 문명/야만, 장애/비장애, 젊음/늙음…. 이분법에는 위계가 있고 혐오는 은유를 타고 확장된다. 젊음은 혁신의 은유, 남자답다는 용기의 은유, 아름다움은 선함의 은유가 된다. 은유에는 논리가 없고 설명이 필요 없다. 스며들 뿐이다. 맞서 싸우기 힘들다. 그래서 몸의 차이를 근거로 차별하면 쉽게 오래 착취할 수 있다. 착취당하는 사람 스스로 자신을 혐오하게 되니까.”_10~11쪽
“우아하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전장연의 투쟁, 몸에 새겨진 차별의 언어들
작가는 최근 논란을 빚었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장애인 시위에 관한 발언을 이 책에서 비판한다. 그리고 장애인들이 ‘이동권’ 등의 기본권에서 배제되고, 장애인 시설로 추방되며 얼마나 ‘비인간’으로 차별당해왔는지 책의 2부 말미에서 낱낱이 꼬집는다.
2022년 3월 26일 이준석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지하철 시위를 향해 “수백만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10대 일간지에 모두 대문짝만하게 실리고 방송도 탔다. 작가에 따르면 전장연이 몇 개월 동안 아침마다 투쟁해도 얻을 수 없었던 발언권이었으며, 장애인 활동가들이 죽어서도 얻을 수 없었던 관심이었다. 약속이야 있었다. 2002년 서울시는 2004년까지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예산 부족’이라는 핑계로 매해 미뤄왔다.
어떤 사람의 목소리는 죽어야 들린다. 장애인들은 국회도 가보고 단식투쟁도 해보고, 한강다리를 건너는 투쟁도 해보고 기획재정부 장관 집 앞까지 찾아갔다. 약속이 유예되는 동안 2001년부터 2017년까지 장애인 다섯 명이 지하철 리프트 추락사로 숨졌다. 그러나 이들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은 기사 한 줄 나기도 힘들었다. 작가는 “왜 이런 방식으로 투쟁해야 해?”라고 묻는 이들에게 말한다. 우아하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요구하지 않아도 기본권을 누릴 수 있는 ‘행운’, 말만 해도 다들 귀 기울여주는 ‘행운’은 모두가 물고 태어나지 않았을 뿐이라고.
“특권은 편안함이다. 너무 자연스러워 특권을 누리는 게 느껴지지도 않아야 일상적 특권이다. 피부색, 성별, 가난 탓에 자기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 매 순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자유다. 타인의 시선,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는 자기 시선, 그 자기 시선을 회의하는 또 다른 자기 시선, 이 모든 시선에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거다. 그 시선들의 투쟁이 일어나는 복잡한 마음을 알지도 못하면서 묻는다. ‘그걸 왜 못 해?’ ‘왜 그렇게 꼬였어?’_109쪽
“고독이 고립이 되기 전에 연대할 것”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인기척
작가는 40대가 되어 여기저기 아프고, 홀로 나이 들어가는 과정을 거치며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면 마음만 외로운 게 아니라 몸도 아프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몸을 사랑한다는 건 뒤틀리고 괴상하고 약한 내가 평가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졌다고 느꼈을 때 가능하다. 작가는 나이가 들수록, 삶이 만만치 않다는 걸 절감할수록, 실은 내가 그리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깨달을수록 사랑은 연민을 닮아간다고 말한다. 자신의 약함을 절감할수록 연민의 폭은 넓어지고 그런 연민은 다정하고 평등하다. 작가는 그 다정함이 우리를 구원할 거라며 슬그머니 다가와 독자들에게 온기를 전한다.
“어떤 몸을 내쫓는 곳에선 모두 불안하다. 모른 척, 아닌 척해도 사실 다들 안다. 사람은 원래 취약하다는 걸 말이다. 효율성 높은 몸이 기준인 곳에서 사람은 취약함을 떠올리게 하는 타인뿐 아니라 자기 안의 약함도 없애버리려 자신을 쥐어짠다. 자신의 약함을 없애버리고 싶을수록 약한 타인이 혐오스럽다. 모든 인간이 존엄하다는 건 순 거짓말이고, 효율성 떨어지는 몸이 되는 순간 ‘비인간’으로 취급되는 곳에서는 약하지 않은 사람도 자신으로 살 수 없다.”_127~128쪽
기본정보
ISBN | 9791160407938 |
---|---|
발행(출시)일자 | 2022년 04월 20일 |
쪽수 | 292쪽 |
크기 |
125 * 200
* 26
mm
/ 405 g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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